표적을 이미 보여주었는데 다시 표적을 구하는 그 세대는 악합니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다른 표적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요나는 특별한 기적을 행한 것이 아니라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라는 메시지만 전했을 뿐입니다(욘3:4). 그러므로 오늘의 메시지가 그들에게는 표적입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있었으나 삶이 뒤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남방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솔로몬을 찾아왔습니다. 요나는 전도는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 진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지혜와 삶이 함께 있고 큰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게다가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까지 보여주었는데 회개하지 않으니 그 세대는 얼마나 악한 세대입니까? 등불을 켜서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추기보다는 등경 위에 두어 환하게 비추도록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가르침과 표적은 그들을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눈입니다. 눈이 성하면 그 빛으로 인해 온 몸이 밝을 터인데 눈이 나쁘기 때문에 온 몸이 어둡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표적을 문제 삼기보다 ‘그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온전한가?’를 살펴야 합니다. 생각과 판단이 밝으면 등불이 비출 때처럼 온전히 밝아질 것입니다.
Application: 밝아지려면 무엇을 살펴야 합니까?
One Word: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