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2) 이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답이면서 욥기 전체적으로 욥의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을 주실 수 있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실 수 있습니다. 2절을 직역하면, ‘주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인데, 원어로 ‘모든’에는 ‘완전함’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은 완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욥은 ‘주는 제게 고난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것입니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권신앙입니다. 지금까지 욥은 자신의 의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판단했습니다. 그럴 때 ‘왜 불의한 자도 평안히 장수하는데 의로운 나는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고난을 주신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의심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무한히 넓은 하나님의 의의 세계와 지극히 좁은 자기의 의의 세계를 동일시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오묘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격적으로 각 사람들을 인도하십니다. 이삭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요셉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다르기에 그 길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왜 나는 저 사람과 같지 않는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는 온전하고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욥기는 이를 가르쳐 주는 지혜의 책입니다.
그 동안 욥은 무지한 자였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3) 그러나 이제 욥은 넓은 하나님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5) 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6) 회개하기까지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하나님은 문제를 삼지 않으십니다. 이후에 욥이 회복됩니다. 이는 1장의 상황으로 회복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1장에서는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하며 축복을 당연시 했다면, 42장에서는 비천한 자에게 은혜로 주셨음을 아는 축복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욥은 고난이 필요했습니다.
Application: 주님은 나를 어떻게든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인정하십니까?
One Word: 주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