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후의 네 번째 연설입니다. 그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관해서였습니다(3). 하나님은 아무도 멸시하지 않으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십니다.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처럼 존귀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이지만 족쇄에 매이고 환난의 줄에 엉킬 수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의인은 환난을 당할 수 없다고 했지만 엘리후는 의인도 환난을 당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환난을 주시는 이유는 어떤 사람이든지 연약하기 때문에 악을 행할 수 있고 교만하게 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난을 통해 이것을 깨닫게 하시고 겸손히 말씀을 듣고 죄악에서 돌이키도록 하십니다(10,11). 그리고 그를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십니다.
우리는 환난을 당할 때 분노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많은 재물이 있다고 해서 이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화가 난다고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해서도 안 되며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높으셔서 우리가 다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을 뿐이지 불의한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Application: 이해할 수 없는 환난 앞에 분노합니까?
One Word: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