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에게 책망을 받는 것이 그의 악이 크고, 끝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올무들이 욥을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엄습했고, 어둠이 보지 못하게 했고, 홍수가 덮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욥을 향한 엘리바스의 방향은 이러합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21) 엘리바스의 말은 그 자체만 보면 지혜의 말입니다. 22절-30절은 은혜롭습니다. 그러나 그의 좋은 말이 욥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의 말 자체는 옳은데도 욥에게는 옳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욥은 악인이다’는 전제를 가지고 말하기 때문에 지혜로운 말은 오히려 비수가 되고 있습니다. 욥이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고, 고아의 팔을 꺾었습니까? 이는 욥의 고난을 보고 욥이 악인이라고 생각하여 추측한 것입니다(31:16-22). 엘리바스는 고난 받는 것을 단순하게 보고, 쉽게 말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진노이다’ ‘고난 받는 사람은 악인이다’ 이런 공식화된 생각으로 고난 받는 사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너는 악인이니 하나님과 화목하면 복이 임할 것이다’는 권면은 고난 받는 인생에 대해 진지한 고뇌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욥이 왜 고난 받는가에 대한 깊은 살핌이 없습니다. 이런 권면은 고난 받는 사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격동하게 합니다. 좋은 말이라도 잘못된 전제에서 나온 권면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Application: 결과만 보고 추측해서 말한 적은 없습니까?
One Word: 잘 살피고 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