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스는 욥에게 고난 중에서 분노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그런 사람은 결국 멸망한다고 충고합니다(2). 욥의 탄식(3장)을 고난 자체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보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뒤의 내용을 보면 욥은 하나님에게 부르짖어 기도하고 친구들과 논쟁하면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욥은 고통 중에 신음하면서 절규하고 있지만 하나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그 고통과 혼란을 쏟아놓을 대상이 없고, 그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기에 하나님 앞에서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과 혼란을 주님 앞에서 쏟아내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사람이 받아줄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받아주십니다. 사람들 앞에서처럼 논리적으로 말할 필요도 없고 꾸밀 필요도 없고 체면을 차릴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작은 신음소리까지 귀 기울여 들으십니다. 이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아가 내 아픔과 고통과 상한 마음을 모두 토설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를 가엽게 여기사 은혜를 베푸십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받아 적고 싶을 정도로 주옥처럼 빛납니다. 성경 어디에서인가 보았음직한 귀중한 말씀들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죄 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이라면 그의 권면은 매우 소중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죄 때문에 하나님에게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권면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만 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말씀은 바르게 적용하지 않으면 사람에게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Application: 하나님에게 나아가 마음을 쏟아냅니까?
One Word: 내 신음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