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 명령을 내렸을 때, 천하의 모든 백성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여행했습니다. 가이사는 통치 목적으로 이 명령을 내렸으나 하나님은 이를 사용하셔서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미가5:2). 천하를 호령하는 가이사라도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루게 하는 막대기에 불과했습니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산통이 시작되어 첫 아들을 낳았으나 강보로 싸서 구유에 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원한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이 가장 운명적이고도 슬픈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는 운명과 슬픔으로 가득한 인생들의 친구가 되시기 위함이요, 그들을 체휼하시고 위로하시기 위함입니다(고후8:9). 이때 주의 천사가 나타나 목자들에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소식은 바로 구주가 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어둡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죄와 죽음의 권세입니다. 이로부터 구원해줄 구원자가 오셨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는 장차 예수님이 이루실 사역과 인격에 대한 표적입니다. 가이사는 힘과 권력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만 말구유의 예수님은 겸손과 사랑으로 섬겨주십니다. 이 말구유의 역사에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Application: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One Word: 겸손과 사랑의 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