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현재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에 처해 있습니다. 그는 먼저 과거를 회상합니다(1-8).하나님은 그 옛날 가나안에서 이방 족속들을 내쫓으시고 조상들을 심으셨습니다(2). 이는 조상들의 칼로 이뤄진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팔과 조상들을 기뻐하신 그 얼굴의 빛으로 이뤄진 일이었습니다(3). 이를 아는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지금도 대적을 누르겠다고 말합니다(5). 내 활이나 칼을 의지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6).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8). 그러나 시인의 현재 형편은 정반대였습니다. 버림을 받고 욕을 당했으며 하나님은 그들의 군대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9). 하나님이 그들을 대적들 앞에서 패배하게 하시고 잡아먹힐 양처럼 적들 앞에 잘 차려진 음식으로 자신들을 넘겨주신 것 같았습니다(10,11).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불신 세상에서 샌드백처럼 계속 얻어터지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시인의 마음에는 냉소가 들어옵니다. 주의 백성을 대적들에게 헐값으로 팔아 무슨 이득을 얻는 게 있으시냐며 따집니다(12). 우리를 이렇게 만드시면 주님만 손해가 아니냐는 뜻입니다.
그래도 시인은 주를 잊지 않고 언약을 어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17). 마음도 위축되지 않고 주의 길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18). 주님이 승냥이의 처소로 밀어 넣으시고 사망의 그늘로 덮으실지라도 그는 하나님을 잊거나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았습니다(19,20). 대적들에게 수치를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은 시인이 겪은 고통은 종일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는 도살할 양과 같은 고통이었습니다(22).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시인은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23)” 하소연을 합니다. 이제 그만 침묵하시고 조상들에게 행 하셨던 능력의 팔을 다시 나타내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을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외침입니다. 시인은 과거 조상들에게 행한 것과 다른 모습을 보이시는 하나님, 신앙의 정조를 지킬지라도 외면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수를 두고 계시는지 읽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절망해야 합니까? 시인은 일어나 우리를 도와달라며 간구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26).
Application: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까?
One Word: 일어나 구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