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가 물었습니다. 이에 예 수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 슬퍼할 필요가 있느냐 되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처럼 기쁨의 근원이시기에 제자들은 금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 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빼앗기는 날에는 금식해야 합니다. 금식은 개인이나 국가의 죄 에 대해 슬퍼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금하고 고통을 받음으로써 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 문제의 해결자는 예수님이시므로 예수님에게 다 맡겨버리면 됩니다. 금식하며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기쁨으로 축제를 즐겨야 합니다. 죄에 대해 애통해 하는 자세는 좋지만 혼인집에서 이렇게 할 수는 없 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신랑이신 예수님 안에서 먹고 마시며 기쁨을 누리는 생활입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는데, 이는 기운 것이 옷을 당겨 둘 다 못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도 없는데, 이는 새 포도주 의 팽창력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됩니다. 생베 조각 과 새 포도주는 새롭고 역동적입니다. 이는 새롭고 신선한 예수님의 세계를 말합니다. 반면 율법주의는 낡은 옷, 낡은 가죽부대와 같습니다. 전통이 아무리 소중하더라도 한 시점의 것으로 고정되면 모든 시점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담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한 시점에서 이해한 예수님보다 예수님 자체가 늘 중심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 잘 했던 것 이라도 예수님보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듯 새 마음으로 예 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에게 맞춰야 합니다. 사람은 낡은 가죽부대처럼 변하고 유한 합니다. 창조주 예수님은 영원하시며 시대마다 늘 새롭게 임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경험과 이성의 틀 안에 예수님을 가두면 안 되고, 예수님 자체를 받아들이고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새 가죽부대처럼 말입니다.
Application: 신앙공동체에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할까요?
One Word: 새 신랑 새 포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