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셨고, 그 증거로 일어나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또 세 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마태 집에서 많은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를 보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몹시 불편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 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7).
예수님은 레위를 병자로 보십니다. 왜냐하면 그의 내면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속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병자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또 병만 치유하면 건강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병자가 의사에게로 올 때 병자를 쫓아버리는 의사는 없습니다. 병자를 안타까워하고, 어떻게든 병자를 치료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려고 오 셨습니다. 지금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리들과 함께 있는 것, 죄 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결코 비난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들이 치료를 받아서 건 강하게 되면 얼마나 유익합니까? 또 얼마나 감사합니까? 실제로 레위가 치유되어 마 태가 되었습니다. 세리에 대한 바리새인의 마음은 차가웠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의사 가 병자를 대하듯이 따뜻했습니다. 의사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어떤 사람이든지 소망 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회복의 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새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의사에게 치료 받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치료, 은혜의 치료가 사람을 살립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은 죄인에게로 가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상대하십니다. 죄인들은 예수님을 통해 의롭게 되고, 건강하게 되고, 새롭게 됩니다.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Application: 죄인이어서 소망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One Word: 죄인을 부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