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말하자 어떤 사람들이 ‘그렇다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말합니다. 이에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더 이상 그 가운데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을 때, 우리는 이 예수님과 합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을 때, 우리도 함께 부활하여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불신하며 죄 가운데 살던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죽고, 새 사람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다스림과 통치에서 벗어났으며, 죄는 우리 위에 군림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에도 때로 죄에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과연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일까?’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에 바울은 우리 자신에 대해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기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를 주장해오던 관성 때문에 우리는 쉽게 죄에 대해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론적 변화를 분명히 인식하고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은 여전히 뿌리가 깊습니다. 이에 바울은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우리 자신을 드리고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 때,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Application: 죄가 나를 주장하려 합니까?
One Word: 지체를 하나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