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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확신이 지나친 엘리바스의 마지막 말

Date : 2015/04/06
Passage : 욥기 22:1~30
Keyverse : 24,25

엘리바스는 세 친구 중에 가장 연장자로서 아는 것도 많고 자기 확신도 강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에게 유익하게 하겠으며,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고 말합니다(2,3). 사람이 아무리 의롭고 선해도 온전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의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에게 유익도 기쁨도 이익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독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는 일을 통해 기쁨도 얻으셨고 슬픔도 느끼셨습니다. 그러므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고생하는 것은 아직도 자신들의 훈계를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그의 완악함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고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지 않고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 무자비한 삶을 살았기에 오늘날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욥의 삶을 보지도 못했으면서도 자기 생각이 정확할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기초해서 말을 합니다.

그리고 욥이 그런 의도로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13)’라고 말한 것이라며 그가 하나님을 멸시한 것처럼 해석하여 말합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확신하는 관점의 틀이 있어서 어떤 말을 해도 자기가 이해하는 흐름에 따라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욥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없었고 그 마음의 중심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며 전능자에게 돌아가라며 촉구하며 헛다리만 짚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연장자답게 잠언과 같은 말씀도 합니다.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24,25)” 물질주의를 청산할 때 하나님이 친히 보배가 되어주실 거라는 말은 길이 새겨들어야 할 명언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자기 확신의 틀 속에서 욥에게 일방적으로 적용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는 심장병 특효약을 변비약으로 잘못 써서 환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Application: 지나친 자기 확신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One Word: 형제를 괴롭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