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15/02/09
Passage : 욥기 9:1~36
Keyverse : 32,33
빌닷은 앞에서 네가 이렇게 하면 의인이 될 것이고 이렇게 하면 잘 될 것이라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의인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며 그가 무엇을 하시든 나는 막을 수 없는 연약한 죄인이라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그는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겠느냐고 말합니다(2).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변론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그 뜻대로 움직이십니다. 그가 하는 일은 측량할 수 없고 기이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앞으로 지나가셔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정도로 무지한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막을 수 없고 왜 그러시냐고 물을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바다 괴물조차도 그 앞에서 굴복하는데 인간인 자신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말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의롭다고 해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유 없이 치시고 자기가 숨 쉬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도 하나님을 소환해서 따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의로워도 나의 입이 나를 정죄하고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할 뿐이라고 욥은 고백합니다. 실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될 길이 없습니다.
욥은 자신이 복을 누릴 만큼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슬펐습니다(25). 아무리 불평을 잊고 얼굴빛을 고쳐 즐겁게 살고자 해도 죄 없다고 하지 않으실 하나님을 생각하면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결국 정죄를 당할 것인데 이렇게 사는 것이 다 헛수고만 같습니다.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씻듯 몸을 깨끗하게 만들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주님이 자신을 개천에 빠지게 하듯 더러운 죄인으로 만드시니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왜 그렇게 만드시냐고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재판 자리에서 맞설 수 없으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그때 욥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자,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손을 얹어 공정히 판단해줄 판결자가 없음으로 절망하고 탄식합니다. 판결자만 있다면 심판의 막대기가 자신을 떠나고 하나님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은 날이 올 것인데 말입니다. 이는 자신을 무지막지 대하시는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공평한 재판관이 혹시라도 있다면 자신에게도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는 중재자요 구원자인 메시아를 대망합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Application: 억울해 보이는 고난들이 주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One Word: 중재자 예수님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