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스는 자신의 경험과 또한 자기가 받은 특별한 계시를 가지고 말에 무게를 실어 욥을 권면했습니다. 사람은 죄에 빠지는 연약한 존재이고 욥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로울 수 없기에 그 분의 징계에 반항하지 않으면 다시 온전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욥은 자신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를 얘기합니다.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운 괴로움과 영혼의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들나귀가 풀이 있고, 소가 꼴이 있으면 울지 않을 텐데 자신이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이 까닭이 없겠느냐고 말합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소금 없이 먹는 달걀 흰자위와 같아서 몸에 좋을지는 몰라도 자기 영혼이 받아들이기엔 역겹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호소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더 이상 참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비록 하나님을 저버린다 해도 친구로부터는 동정을 받는 법인데 친구라고 찾아와서 하는 말이 개울같이 변덕스럽기만 하고 곧 녹아 없어지는 얼음과 눈처럼 얕고 가볍다고 탄식합니다.
이제 욥은 친구를 향해 공격적으로 말을 이어갑니다. 자신이 언제 무엇을 달라고 말했느냐고, 자신을 위해 재물을 달라고 했느냐고 말합니다. 원수의 손에서 폭군의 손에서 건져달라고 했느냐고 말합니다. 그렇게 엄청난 부탁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자신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25,26)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는지 꾸짖을 생각만 하는 그들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는, 의미 없이 지절대는 말과 같다고 합니다. 고아를 제비 뽑고 친구를 팔아넘기듯이 매우 심각하고 위중한 일을 쉽게 한다고 말합니다.
재난과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는 옳은 말, 가르치는 말보다 먼저 공감과 이해의 말이 필요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친구라고 도우러 왔다가 의만 상한 채로 돌아가게 됩니다. 물론 욥도 아직 자기의가 살아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은 것을 기뻐한다고 하며 자기 의가 건재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겸손하게 돕는 것이 쉽지 않지만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섬김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Application: 자기 의를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 옳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One Word: 먼저 이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