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욥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욥이 불의하기 때문에 부르짖어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욥의 탄식이 스스로를 죽이는 분노라고 비난합니다. 욥이 당한 고난이 근거 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고 죄 때문에 당하는 저주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나아가서 기도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니 눈물로 회개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계교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이 그의 죄 때문에 온 것이라고 단정하고 해결책까지 제시합니다. 그의 해결책이 그럴싸해 보이지만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자기 주관에 기초한 카운슬링은 매우 위험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징계에도 뜻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도 싸매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수많은 환난 중에서도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기근과 전쟁, 사람들의 비방 가운데서도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평안함이 임하게 됩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않고 잘 감당하면 평안이 오게 됩니다. 그러나 욥의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 일방적으로 전달될 때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조롱이 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입니다(잠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 주기 위해서는 나의 선입견을 내려놓고 하나님에게 겸손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9).
Application: 어떤 자세로 조언해야 할까요?
One Word: 기도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