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믿는 유대인 가운데 바울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울이 이방의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심지어 그 아들들에게 할례도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가르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누구보다도 열성이었던 이들이 바울이 온 것을 들으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때 나실인 서원을 한 네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은 결례가 필요했습니다. 바울을 맞이한 예루살렘의 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이 이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머리 깎는 비용을 낼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동족 유대인 신자들의 오해가 풀릴 것을 기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과 관습이 구원의 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음을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제안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것이 꼭 필요하냐며 따졌습니까? 죽어도 할 수 없다며 반발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안을 받아들여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결례 기간이 끝날 때까지 성전에 머물렀습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했을까요? 위협이 두려워 타협했던 것일까요? 그는 고린도전서 9장 20절에서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바울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스스로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목표는 어찌하든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생각과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지만 양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만의 틀, 스타일, 생각은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것만 고집하다가 양들에게 상처 주고 교회의 화평을 깨고 구원 역사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던,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어내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천부장을 통해 바울을 구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오해를 풀고자 해도 끝까지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의 핍박은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Application: 자기만 고집합니까?
One Word: 생명 구원을 위해 자기를 고집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