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에베소 장로들과 눈물로 이별을 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두로에 상륙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 이레를 머물렀는데,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목자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빌립의 집에 들어가 머물렀습니다. 그때 아가보라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왔습니다. 그는 천하의 큰 흉년을 예언했던 선지자였습니다(행11:27,28). 그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였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어떻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선교 동역자들과 가이사랴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목자 바울이 위험에 빠지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눈물을 흘리며 말렸습니다. 이때 목자는 마음이 약해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예언까지 있는데 어떠하겠습니까? 바울은 그러나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합니까?
바울도 양들의 눈물을 보자 마음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각오는 확고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그의 인생의 목적은 오직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라면 결박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했습니다. 주 예수를 위해서라면 고난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생명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기꺼이 죽음의 땅도 가고자 합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살고자 할 때 우리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양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배척을 받고 배반도 당합니다. 심지어 고소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결박뿐 아니라 죽음도 각오한 바울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각오로 고난을 이기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Application: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어떤 각오까지 합니까?
One Word: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