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센 천사의 손에 작은 두루마리가 펴 있었습니다. 이 두루마리에는 심판과 구원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역사입니다. 죄악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고, 회개한 곳에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말씀은 곧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두루마리를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가지라’(8), ‘먹으라’(9), ‘예언하라’(11)고 말씀하십니다.
심판과 구원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소중한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또 가지고만 있어서는 안 되고 먹어야 합니다. 먹으면 배에서 소화되어 살이 되고, 피가 되고, 힘이 됩니다. 이처럼 말씀을 먹어서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녹아 내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이 두루마리를 먹으니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10). 말씀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합니다.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답니다. 위로와 소망과 구원은 답니다. 그러나 책망과 심판의 쓴 말씀도 있습니다. 애통과 회개는 씁니다. 또한 우리가 말씀을 받는 것은 달콤하지만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은 씁니다. 쓴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씀’은 말씀이 내 심령으로 녹아 들어오는 과정입니다. 쓴 것을 참고 견디고 이겨내면서 말씀과 내가 하나가 되어 내 말씀이 됩니다. 또한 내 안에 녹아 들어와 힘이 되고 생명이 되는 말씀이 됩니다. 현재 1세기 성도들은 쓴 맛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먹은 사람은 누구나 그 말씀으로 인해 손해를 보기도 하고, 시험을 당하기도 하고, 거짓되고 더러운 것들과 힘들게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달게 먹은 말씀의 참 뜻을 깨닫고 속사람이 말씀대로 변화되고 성장합니다. 그러니 쓴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요, 정상입니다.
말씀을 먹은 사람은 예언(전파)해야 합니다. 말씀의 증인들은 단 구원을 선포하며, 쓴 심판을 경고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말씀으로 생명을 얻도록 도와야 합니다.
Application: 단 말씀만 원합니까?
One Word: 말씀은 쓰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