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나팔, 여섯째 나팔은 전쟁 재앙입니다. 1-5절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거대한 떼를 지어 다니며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황충(메뚜기의 일종. 게르만족으로 보기도 함)은 아볼리온(‘파괴’란 의미)의 병사들입니다(7-11). 그들은 불신자(대적자)를 죽음의 고통으로 몰아넣습니다(4-6,10). 그 고통이 너무 커서 사람들은 차라리 죽고 싶어 하지만 죽을 수도 없습니다. 동방에서 온 수억의 마병대(이슬람으로 보기도 함)는 불과 연기와 유향으로 사람의 삼분의 일을 죽입니다(14-18). 이러한 재앙을 내리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20,21) 하나님은 대적하는 자들을 치시면서도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재앙에 자비를 남겨 두십니다. 심판으로 끝내려 하신다면 한번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인 재앙, 나팔 재앙, 대접 재앙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긍휼의 손길이 심판과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어떤 사람은 정의의 이름으로 무자비한 보복을 요구합니다. 그리고는 ‘왜 하나님은 정의를 세우시지 않는가’ 불만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면서 보복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당장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원수가 완전히 망하는 것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원수라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하기에 후로 로마가 복음화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의 목자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과 재앙을 겪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계시록의 주제(흐름)에 비추어 보면, 여전히 자기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허물어져 가면서도 ‘나는 강하다’는 생각을 고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더 큰 대접 재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번 올라가면 내려오기 어렵고, 한번 높아지면 낮추기 어렵습니다. 이미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높아졌을 때의 마음을 품고 삽니다. 이를 두고 교만에 사로잡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망합니다. 교만해지면 망하지 않고는 겸손해지기가 어렵습니다.
Application: 재앙에 담긴 뜻이 무엇입니까?
One Word: 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