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는 상한 심정을 가진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왜 눈물의 선지자가 되었을까요? 첫째, 예루살렘 백성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5).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킵니다. 사람이 엎드러지면 일어나고, 떠나갔으면 돌아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항상 하나님을 떠나 물러갔습니다. 거짓과 악을 행하는 모습이 전쟁터를 향하여 말 달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활을 당김 같이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했습니다. 형제들을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했습니다. 거짓말하기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속이는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알기를 싫어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7).” 왜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했습니까? 말씀을 맡은 서기관들이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했습니다(10). 그들은 영적 지도자들로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여호와께로 돌아오도록 가르쳐야 했는데, 진실과 진리를 가르쳐야 했는데,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선지가 예레미야는 너무나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둘째, 그들이 당할 처참한 심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십니다. 바벨론의 말발굽 소리가 마침내 북쪽 국경지대인 단에서 들려옵니다. 이 심판은 어떤 술법으로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뱀과 독사가 사정없이 그들을 물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백성들은 자신들이 여호와께 범죄한 것을 깨닫지만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 들어가서 거기서 멸망하자” 자멸하는 소리를 내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게 하심이라”며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더불어 그들이 당할 고통을 들었을 때 예레미야에게 슬픔과 근심이 몰려왔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18)라고 탄식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때는 지나고 심판만 남았습니다. 치료받을 기회를 놓쳤습니다. 길르앗은 유향의 산지로 유명한데 이것은 당시 병 치료의 약재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약재도 있고 의사도 있는데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탄식했습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야로 흘렀습니다. 죽임을 당할 백성을 생각할 때 그의 눈은 눈물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습니다. 우리도 회개하지 않는 이 시대와 양들을 보며 울어야 하겠습니다. 죄로 인해 심판 받을 그들을 보며 상한 심정으로 울고 복음으로 치료해야 하겠습니다.
Application: 멸망당할 영혼을 보며 울고 있습니까?
One Word: 내 눈은 눈물 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