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고난의 시를 마무리하는 지금, 시인은 자신이 잃은 양 같이 방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176). 고난 속에서 잃은 양처럼 보호 받지 못하고,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까닭 없이 핍박 받는 상황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61). 그럼 마음도 방황했을까요? 슬퍼하고 울었을까요? 공격하는 자들을 두려워하며 불안해했을까요? 그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했습니다(162). 주의 율법을 사랑했습니다(163).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했습니다(164). 큰 평안이 있었습니다(165).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습니다(166). 주의 증거들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167). 또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171-173) 도대체 잃은 양 같지 않습니다. 꼴을 배불리 먹고 우리 안에 누운 양의 노래 같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161) 주의 말씀을 경외하는 것은 곧 주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주를 경외한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만물과 만사를 주관하심을 믿고 그 분에게 고개를 숙이는 마음입니다. 그분의 임재를 느끼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시인의 외적인 모습은 잃은 양 같지만 내적인 모습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고관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있었습니다. 교만한 자에게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 일곱 번 찬양하고, 큰 평안을 누리며, 즐거이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사람은 잃은 양 같이 방황해도 행복합니다. 방황하며 노래합니다. 그는 주께서 자기를 찾으실 것을 믿습니다(176).
Application: 어떻게 하루 일곱 번씩 찬양할 수 있을까요?
One Word: 주의 말씀을 경외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