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마음속으로 주의 장막(궁정, 성전)을 그려 봅니다.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1) 직접 올라가서 섬기지 못하는 시인은 영혼이 쇠약해질 정도로 여호와의 성전을 사모했습니다(2). 그는 하나님을 뵙기를 마음과 몸으로 부르짖었습니다. 주의 성전에서는 참새, 제비도 보금자리(편히 쉴 곳)를 얻었습니다(3). 어떤 자가 복이 있습니까? 주의 집에 사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4). 성전을 향해 오는 자(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5). 주께 와서 주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12). 주님은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도 많은 샘과 이른 비로 복을 채워 주십니다(6).
시인은 왜 이처럼 여호와의 성전에 가려 합니까?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10) 주님과 함께 하는 하루가 주님 없는 천일 보다 더 낫기 때문입니다. 초가삼간이라도 주님이 있는 곳에서 하루를 사는 것이, 먹고 마시며 천일을 사는 것보다 더 낫기 때문입니다. 주님 없는 천 날은 헛됩니다. 허망합니다.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해 같이 빛납니다. 주님만이 은혜와 영광을 주십니다. 좋은 것을 주십니다(11). 그래서 시인은 고백합니다.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 악인의 장막에는 악인이 좋아하는 것이 많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고 싶어 합니다. 성전 문지기는 고생하는 자리입니다. 섬기는 자리입니다. 그럴지라도 악인의 장막에서 호사를 누리는 것보다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호와의 성전을 너무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진정 복된 것은 여호와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인은 성전 문지기로라도 여호와 곁에 머물길 원합니다.
Application: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을 좋아합니까?
One Word: 문지기로라도 성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