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권리 포기를 너머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들처럼, 율법없는 자에게는 율법없는 자처럼 되었습니다. 왜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 진정한 유익을 얻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지만 피조물이 되셨고 종이 되시므로, 바울이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였습니다(23). 바울은 썩지 아니할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달립니다. 절제하며 달립니다. 달리되 목표가 분명합니다. 싸움의 대상도 분명합니다. 권리를 주장하는 마음, 종이 되기보다 주인이 되려는 그 마음과 싸웁니다. 반면에 고린도 성도들은 아는 게 많았고, 돈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주장하는 마음도 많아졌습니다. 썩지 않는 면류관보다 썩을 면류관에 마음이 많이 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습니다. 다시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쳐 복종시켜야 할 때였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Application: 복음을 위하여 무엇을 행하고 있습니까?
One Word: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